지난 글을 통해 교회 행정과 사역 전반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나눴습니다. 교회의 공식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AI라는 공적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민감한 영역을 다루고자 합니다. 바로 “설교자 역시 AI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중이 이미 AI를 쓰고 있다면, 설교자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가 AI를 거부할 수 없는 가장 명확한 이유는 우리의 메시지를 듣는 성도들이 이미 AI를 일상 깊숙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토요일이 되면 주보에 공개된 설교 본문을 제미나이(Gemini)나 챗GPT에 먼저 입력해 봅니다. 그리고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문맥적 의미를 나름대로 명석하게 파악한 채 주일 예배 자리에 나옵니다.
현재 AI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를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노라하는 신학 주석서와 논문들을 통째로 학습한 상태입니다. 어떤 까다로운 성경적 난제나 복잡한 신학적 주제를 던져도 매우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성도에게 “목사님, 제미나이는 오늘 목사님의 해석이 학계에서는 소수 의견이라고 하던데요?”라는 반론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즉 더 깊은 설교를 향한 건강한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설교자에게 일말의 긴장감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깊이 고뇌하는 목회자에게 성도들의 이러한 주도적인 태도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설교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건강한 자극제가 됩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미리 공부하고 고민해 온다는 것은, 설교자 역시 얄팍한 지식 전달에 머무를 수 없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경험한 바로는 AI를 활용하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공통의 신학적 지식을 확인하는 '기초 다지기'에 불과합니다. 설교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AI가 내린 정답’이 아니라, ‘설교자가 치열하게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결론’입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설교자가 마주했던 삶의 지난한 고민, 그리고 눈물 어린 말씀 묵상의 흔적을 성도들과 나누는 과정이야말로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AI에게 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먼저 메시지의 방향과 영적 골자를 바르게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장, 현실에서 선포해야 할 말씀을 끄집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AI 시대를 맞이하는 설교자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AI의 '미끈한 정답'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설교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믿음과 칭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들은 AI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미끈하고 정제된 답변으로 출력됩니다. 그러나 그 완벽해 보이는 문장 안에는 결코 담길 수 없는 치명적이면서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설교자의 치열한 독서와 깊은 묵상, 그리고 넓은 안목과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울림’입니다.
따라서 AI 시대일수록 목회자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신학 서적을 뒤적이고 신앙 도서를 탐독해야 하며, 주일 강단을 위한 깊은 묵상과 씨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AI의 평면적인 본문 해설을 넘어,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입체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의 고민들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는 설교자만의 고유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강단 뒤에서 벌이는 씨름은 고독하고 불완전합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빈틈과 한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AI에게는 없는 바로 그 '인간적인 흔적과 고뇌'가 있기에, 오늘날 설교자의 연구와 묵상은 여전히 숭고하며 대체 불가능합니다.
AI 시대에 다시 성도를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AI입니다. 결국 AI는 설교자로 하여금 ‘메시지를 들을 성도들’을 끊임없이 환기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한때 목양실을 찾아와 신앙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던 그 성도들이, 이제는 스마트폰을 켜고 AI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 기술이 제공하는 답변이 내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메시지보다 더 설득력 있고 영적 갈증을 잘 해소해 준다면, 그것은 설교자로서, 목사로서 내가 하나님 앞에 더 깨어 긴장해야 한다는 엄숙한 경고입니다.
AI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교회의 행정과 설교는 이제 더 깊은 질적 도전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전을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고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디지털 시대 속에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시대를 선도하는 바른 영적 이정표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설교자들이 그 거룩한 기회를 붙잡아야 할 때입니다.
몽우 폴양
지난 글을 통해 교회 행정과 사역 전반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나눴습니다. 교회의 공식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AI라는 공적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민감한 영역을 다루고자 합니다. 바로 “설교자 역시 AI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중이 이미 AI를 쓰고 있다면, 설교자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가 AI를 거부할 수 없는 가장 명확한 이유는 우리의 메시지를 듣는 성도들이 이미 AI를 일상 깊숙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토요일이 되면 주보에 공개된 설교 본문을 제미나이(Gemini)나 챗GPT에 먼저 입력해 봅니다. 그리고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문맥적 의미를 나름대로 명석하게 파악한 채 주일 예배 자리에 나옵니다.
현재 AI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를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노라하는 신학 주석서와 논문들을 통째로 학습한 상태입니다. 어떤 까다로운 성경적 난제나 복잡한 신학적 주제를 던져도 매우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성도에게 “목사님, 제미나이는 오늘 목사님의 해석이 학계에서는 소수 의견이라고 하던데요?”라는 반론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즉 더 깊은 설교를 향한 건강한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설교자에게 일말의 긴장감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깊이 고뇌하는 목회자에게 성도들의 이러한 주도적인 태도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설교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건강한 자극제가 됩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미리 공부하고 고민해 온다는 것은, 설교자 역시 얄팍한 지식 전달에 머무를 수 없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경험한 바로는 AI를 활용하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공통의 신학적 지식을 확인하는 '기초 다지기'에 불과합니다. 설교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AI가 내린 정답’이 아니라, ‘설교자가 치열하게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결론’입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설교자가 마주했던 삶의 지난한 고민, 그리고 눈물 어린 말씀 묵상의 흔적을 성도들과 나누는 과정이야말로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AI에게 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먼저 메시지의 방향과 영적 골자를 바르게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장, 현실에서 선포해야 할 말씀을 끄집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AI 시대를 맞이하는 설교자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AI의 '미끈한 정답'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설교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믿음과 칭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들은 AI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미끈하고 정제된 답변으로 출력됩니다. 그러나 그 완벽해 보이는 문장 안에는 결코 담길 수 없는 치명적이면서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설교자의 치열한 독서와 깊은 묵상, 그리고 넓은 안목과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울림’입니다.
따라서 AI 시대일수록 목회자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신학 서적을 뒤적이고 신앙 도서를 탐독해야 하며, 주일 강단을 위한 깊은 묵상과 씨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AI의 평면적인 본문 해설을 넘어,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입체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의 고민들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는 설교자만의 고유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강단 뒤에서 벌이는 씨름은 고독하고 불완전합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빈틈과 한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AI에게는 없는 바로 그 '인간적인 흔적과 고뇌'가 있기에, 오늘날 설교자의 연구와 묵상은 여전히 숭고하며 대체 불가능합니다.
AI 시대에 다시 성도를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AI입니다. 결국 AI는 설교자로 하여금 ‘메시지를 들을 성도들’을 끊임없이 환기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한때 목양실을 찾아와 신앙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던 그 성도들이, 이제는 스마트폰을 켜고 AI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 기술이 제공하는 답변이 내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메시지보다 더 설득력 있고 영적 갈증을 잘 해소해 준다면, 그것은 설교자로서, 목사로서 내가 하나님 앞에 더 깨어 긴장해야 한다는 엄숙한 경고입니다.
AI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교회의 행정과 설교는 이제 더 깊은 질적 도전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전을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고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디지털 시대 속에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시대를 선도하는 바른 영적 이정표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설교자들이 그 거룩한 기회를 붙잡아야 할 때입니다.
몽우 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