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예수님과 살기

고난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확성기(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성경에서 고난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구절 중 하나이다.

1. '고난'과 '배움'의 상관관계

고난 당한 것(Affliction): 고난은 육체적 질병, 주변의 비난, 혹은 영적인 침체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내게 유익이라(It is good for me): 고난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가 성장을 가져왔음을 고백하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이 없었을 때는 머리로만 알던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을 통과하며 삶의 실제적인 지혜와 확신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2. 고난이 주는 3가지 영적 유익

성경 전체의 맥락과 연결해 볼 때, 이 구절이 말하는 '유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향의 수정: 시편 119:67에 따르면, 시인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으나 고난 후에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난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영적인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순금 같은 연단: 욥기 23:10에서 말하듯, 고난은 신앙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우리를 정금(순금)같이 만드는 과정이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평안할 때는 내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고난의 시기에는 시편 23:4의 고백처럼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가장 뜨겁게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삶의 고통이 올 때마다 내가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가 우리 앞에 무엇이 있다고 바꿀 수 있겠는가? 우리는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다. 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내 뜻과 내 계획을 바꿀려 하는 것이 옮을까?  물론 흘러간다고 하는 삶이 아무것도 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 내 가정, 교회, 직업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되어진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이 자리를 허락하신 것이기에 순종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은혜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이런 말을 종종 한다. “표현력이 곧 실력이다.” 표현이 되지 않으면 실력이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음악가의 머리에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 있어도 오선지에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표현하는 능력이 곧 그의 실력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있으면 그 신앙은 마당히 표현되어야 한다. 성경의 이야기를 듣고 동의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이 아니다. 믿음으로 얼마만큼 오늘을 살아 내느냐가 그 사람의 수준이다. 신앙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그것도 어려움이 올 때에 반응하는 내 방식이 믿음의 실력이고 표현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난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준비'로서의 고난.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즉, 고난이 닥쳤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통과할 만한 영적 근육이 생겼거나, 혹은 그 고난을 통해 더 큰 일을 맡기시기 위해 그릇을 넓히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로마서 5:3-4에서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결국 소망을 이루는 과정을 설명하며 고난이 성숙을 위한 필수 코스임을 강조한다.


고난을 아주 멋지게 표현한 사람이 있다. 영국의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C.S. 루이스(C.S. Lewis)이다. 그의 저서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에서 사용한 아주 유명한 비유이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난 속에서 소리치신다. 고난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확성기다."고난은 잠든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을 세 가지 단계로 설명했다. 즐거움 속에서의 속삭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고 즐거울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신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무시하곤 한다. 양심 속에서의 말씀이다. 우리 마음의 양심을 통해 옳고 그름을 말씀하시며 우리를 이끄신다. 고난 속에서의 외침이다.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 도무지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들고 우리 영혼에 대고 크게 외치신다는 것이다. 


그는 고난을 골절된 뼈를 다시 맞추는 고통이기에 "치유를 위한 비명"이라고 보았다. 루이스는 고난을 '어긋난 뼈를 맞추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뼈가 잘못 붙으면 평생 불구가 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미 붙어버린 뼈를 다시 어긋나게 하거나 강한 힘으로 압박해야 하는데, 이때 환자는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이 고통은 죽이기 위한 통증이 아니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통증'이다. 하나님께서 확성기를 크게 켜시는 이유는, 우리가 잘못된 가치관과 습관에 고착되어 영적으로 불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영혼의 뼈마디를 재조정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방향 수정: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속삭임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고난이라는 큰 소리를 통해 우리를 멈춰 세우시고 올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신다. 


교만 깨뜨리기: 인간은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스스로를 주인이라 착각하기 쉽다. 고난은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하여 다시 창조주를 바라보게 만든다.


사랑의 역설: 확성기는 시끄럽고 고통스럽지만, 그 목적은 파멸이 아니라 '소통'에 있다. 즉, 고난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을 옆에서 조용히 부르면(즐거움/양심) 깨지 않지만, 불이 났을 때는 확성기로 소리를 질러야만(고난)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과 같다. 당장은 그 소리가 귀를 괴롭히고 불쾌할지라도, 결국 그 소리 덕분에 생명을 구하게 되는 원리이다.


어려울 때 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신다. 이렇게 말하는 성경의 논리는 왜? 어려움이 온다는 것은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어려움은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성경은 약할 때에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강한 것이 능력이 아니다. 약한 것이 능력이다. 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완벽하다. 그 분은 지혜, 능력, 모든 것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 분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잘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내가 주도하지 않고 나를 가장 잘아는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그 흐름대로 사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장애물이 있으면 비켜가고 둑이 있으면 넘어가고 물줄기가 빨라지면 빨라지고 느려지면 느려지게 흘러가는 것이다. 결국 강물은 바다를 만난다. 믿음은 이렇게 내 삶의 강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품인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세상의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이 고난의 정적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들리기 때문아다. 지금 겪고 계신 상황이 단순히 견뎌야 할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깊이 체험하는 '최고의 수업 시간'이 되기를 응원한다.

담임목사 : 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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