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예수님과 살기

우리에게 신뢰할 만한 교회와 사람이 그립다(데살로니가전서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 구절은 앞뒤의 구절들과 함께 하나의 세트로 묶여 이해해야 한다. 살전5:16-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바울은 로니가 당시 로마 제국의 압박과 고난 속에 있던 초기 신자들이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한 말이다.


'범사에(엔 판티)'-엔(en):~안에서, ~의 상황에서/ 판티(panti): 모든 것, 모든 상황, 모든 환경이다. 이 의미는 단순히 '좋은 일에만' 감사를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편과 환경, 심지어 고난이나 이해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도"라는 뜻을 내포한다. 


감사하라(유카리스)-유(eu): 좋은, 은혜로운/ 카리스(charis)-은혜, 선물이다. 이 의미는 '은혜를 좋은 것으로 반응하여 표하다'라는 뜻이다. 주의 만찬을 뜻하는 단어(Eucharist)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명령형 동사로 쓰여, 감사가 단순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적인 선택이자 행동'임을 강조한다.


첫째, 감사의 조건은 '조건부'가 아닌 '상황을 초월한' 감사이다. 일반적인 감사는 "~ 때문에(Because of)" 하는 조건부 감사이다. 일이 잘 풀려서, 건강해서 등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범사의 감사'는 "~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하는 감사이자, "그 상황 안에서(In everything)" 올리는 감사이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과정 전체를 인정하는 태도이다.


둘째, 기쁨·기도·감사의 삼각 고리를 나란히 배치했다. ‘항상 기뻐하라’는 내면의 태도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연결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외부 상황을 대하는 성도들의 실천이다. 이 셋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끊임없이 기도하여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18절 후반부에는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적으로 명시했다. 거창한 사회적 성공이나 과업을 이루는 것보다, 일상에서 기뻐하고 기도하며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는 본질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현대적·심리학적 시사점을 발견한다. 종교적 맥락을 넘어, 현대 긍정 심리학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의 유익을 깊이 다룬다. 그것은 관점의 전환(Reframing)이다. 고난이나 실패를 만났을 때 불평 대신 "이 상황에서도 내가 배울 점이나 감사할 작은 것은 무엇인가?"를 찾는 행위는 뇌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극대화한다. 그것은 의지적 감사이다. 감정은 통제하기 어렵지만, 감사는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감사는 상황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삶에서 주도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열쇠가 된다.


현대적 심리학적 관점에 이 말씀을 기독교가 인간의 감정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을 생각해 보자. 어떤 분이 시험에 떨어졌다. 그럼 우리는 “감사하세요.”라고 말한다. 사업이 망했다. “그래도 감사해야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신자의 성경적 삶의 모습일까?


이럴 때에는 뜻을 설명할 때가 아니라 옆에 조용히 앉아 있을 때이다. 사람이 울고 있는데 감사를 숙제로 내주지 말아야 한다. 눈물도 다 마르기 전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감정 노동일 수 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모든 사건이 좋은 일이니 감사하라는 뜻이 아니다. 폭력에 감사하고, 질병에 감사하며, 배신과 죽음을 축복이라고 부르라는 말도 아니다. 그건 신앙이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는 종교적 억지다. 아픈 일은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부당한 일에는 분노하고, 잘못된 일에는 책임을 물으며, 상실 앞에서는 충분히 울어야 한다. 하나님도 우리가 슬픈데 행복한 표정을 연기한다고 감동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천국에 감정평가서가 있어서 감사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일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 가운데서도 완전히 빼앗기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병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아픈 날에도 곁을 지켜준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실패가 축복이라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다고 내 존재까지 실패한 것은 아님을 믿는 것이다. 어둠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빛의 마지막 말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감사는 고난을 미화하는 기술이 아니다. 고난이 내 삶의 전부가 되지 못하도록 마음 한구석에 작은 창문을 남겨두는 일이다. 오늘 감사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억지로 찾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렇게 기도해도 된다. “하나님, 지금은 너무 아파서 감사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 말도 정직한 기도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거짓 감사 열 마디보다 솔직한 탄식 한마디를 더 귀하게 들으실지 모른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아픈 사람의 입을 막는 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말씀은 고통을 부정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삶과 하나님을 끝내 포기하지 말라는 초대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언제나 즉시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 상처가 조금 아문 뒤에야 도착한다. 그러니 오늘 울고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라고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그의 곁에 앉아 함께 울어주자. 아마 그 사람이 훗날 감사하게 된다면 고난 때문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자신을 혼자 두지 않았던 당신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신뢰할 만한 공동체, 사람들이 그립다. 이건 나만의 소원이 아닐 것이다. 헨리 만우엔 같은 분도 이렇게 느꼈다. “안전한 공동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그립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에서 ”나는 혼자 있을 때 예수님께 진심으로 신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거듭거듭 체험했습니다. 나는 함께 기도하고, 당면한 영적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며,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늘 순수하도록 나를 도전할 형제와 자매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감사의 삶을 살면서 공동체의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자.

담임목사 : 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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