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예수님과 살기

힘을 빼고 한 걸음 물러설 때 누리는 하나님의 통치(시편 46:10)-8/15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예전 박사 과정 공부했던 서든 세미나리에서 정식으로 수영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이 있습니다. “물과 싸우지 마십시오. 온몸에 힘을 빼고, 물과의 싸움을 멈출 때 몸이 물에 뜹니다.” 그때 저는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물속에서 거칠게 허우적거리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몸은 더욱 무겁게 아래로 가라앉았고, 숨은 가빠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뜨고야 말겠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온몸의 긴장을 푸는 순간, 제 몸은 거짓말처럼 물 위로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물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자유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인생을 망망대해로 비유합니다. 살아가는 인생의 망망대해에는 내 힘과 의지로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상황들이 불쑥 찾아옵니다. 이때 우리 마음속에 찾아오는 가장 큰 적은 바로 ‘공포, 두려움’입니다. 공푸와 두려움이 찾아오면 우리의 삶은 경직되고, 사고는 무력화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더 강하게 손에 힘을 주고, 내 뜻대로 그 두려운 상황을 통제해보려고 허우적거립니다. 그 상황을 통제하려는 본능이 이렇게 강합니다. 


오늘 시편의 배경 역시 심각한 통제 불능의 위기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첫째 통제의 집착을 내려놓는 ‘힘 빼기’입니다. 10 전반절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어다…” “가만히 있으라-라파”는 말씀은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자포자기하라는 뜻이 아닌 “손을 늘어뜨리다”, “힘을 빼다”, “내려놓다”입니다. 영어 성경 NASB는 이 구절을 "Cease striving" 즉 "버둥거리며 애쓰는 것을 멈추라"고 번역합니다.


삶에서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과도한 집착'에서 시작됩니다. "이 문제가 내 생각대로 해결되어야만 해." "이 상황을 내가 쥐락펴락 해야 안전해." 이러한 강박과 지나친 목표지향적 태도가 몸과 영혼에 힘을 들어가게 만들고, 결국 바다 위에서 우리를 가라앉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손에서 힘을 빼라. 네가 상황을 주무르려고 버둥거리는 그 거친 저항을 멈추어라." 


여기 ‘힘을 뺀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의 기술이 아닙니다. 힘을 뺀다는 것은 결코 포기가 아닙니다. ‘힘빼기 영성’은 삶의 목적지에 안전하게 다다르기 위해 불필요한 내 자아의 저항을 멈추는 지혜입니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올 때, 통제하려는 고집을 내려놓고 그 파도에 몸을 실어보는 거룩한 유연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을 빼고 한 걸음 물러설 때, 우리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둘째 힘을 뺀 한 걸음 물러설 때 하나님이 보입니다. 10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야다'는 단순히 머리로 지식을 얻는 이론적 앎이 아닙니다. ‘몸소 체험하여 인격적으로 깊이 깨닫는 경험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자기 힘과 지혜로 상황을 통제하려고 손에 힘을 주고 버둥거리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손의 ‘힘을 빼고(라파)’, 내 의지의 통제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아, 이 상황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셨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이 거친 파도를 주관하시는구나!"라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게(야다)’ 됩니다. 내가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을 멈출 때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온 힘을 주고 허우적거리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영적 공간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혜와 혈기로 온통 바쁘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고집과 강박에서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그동안 긴장과 조급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해결책과 구원의 손길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영을 할 때 몸에 힘을 빼면 내 몸을 받쳐주는 물의 밀도가 느껴지듯, 우리 삶에서 힘을 빼면 우리를 떠받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윈드 서퍼들은 파도가 높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날을 가장 기다린다고 합니다. 거센 바람을 타고 더 높이 오르는 통쾌한 경험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보 서퍼와 노련한 서퍼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힘'에 있다는 점입니다. 초보 서퍼들은 파도가 밀려오면 공포감에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힘을 주어 파도와 맞서 싸우려 합니다. 결과는 어김없이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처박힙니다. 반면 노련한 서퍼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힘을 뺀 채 파도에 몸을 유연하게 맡깁니다. 파도의 흐름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여유 있게 올라섭니다.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실었기에 균형을 잃지 않고, 거센 파도조차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힘을 뺀 다음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방향과 중심’입니다. 서퍼가 힘을 빼더라도 나아가야 할 방향과 중심축을 잃지 않아야 파도를 타듯, 우리도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fixed(고정)’해야 합니다. 파도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와도 "하나님이 나의 선장이시다"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이 파도조차도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가시는 도구다"라는 중심만 잃지 않는다면, 그 파도는 나를 침몰시키는 비극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 높은 영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주는 은혜의 승강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힘을 빼는 영성’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셋째, 통제할 수 없는 그 통제 불능의 영역을 덮는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합니다. 시46:6절에서 "뭇 나라가 웅성거리며 왕국이 흔들렸나니"가 소개됩니다. '뭇 나라(열방)'와 '왕국'은 개인이나 한 공동체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외부의 위협’을 상징합니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높임을 받으리라(룸)"는 인간의 무력함 끝에 선포되는 승리입니다. 히브리어 '룸'은 "높이 올려지다", "비할 데 없이 우뚝 서다", "최종 승리를 거두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이 직접 이루시는 영광입니다. 인간의 혈기와 노력이 무너지고, 인간이 손을 늘어뜨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우뚝 서게 됩니다.


가끔 목사로서 나 한 사람의 문제와 우리 교회의 크고 작은 문제에 매여 밤새 잠을 못 이를 때에 잔뜩 긴장하여 힘을 줍니다. 내가 교회의 모든 일을 다 해결하려 합니다. 얼마나 힘들고 부대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은 내 인생의 거친 파도와 소동하는 열방 전체를 주관하시는 거대한 주권자이심이 안 믿어집니다. 그런데 내 힘을 빼고 내 시선을 들 때, 크고 작은 교회 문제에만 갇혀 있던 내 눈에서 벗어나 온 세상과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통치권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내 힘으로 나를 증명하려 하고, 내 힘으로 교회를 지키려 하고,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쓸 때는 하나님의 높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계와 무력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백기를 들 때 손을 들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가 속한 삶의 현장,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교회가 마주한 바다는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시대적 풍랑과 불확실성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거대한 힘에 압도되어 영적으로 표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항할 수 없는 세속의 흐름에 내 힘으로 맞서 싸우다가 기력을 다해 지쳐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시편 46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적 '힘 빼기'를 도전하십니다. 지나친 집착이나 조급함, 내가 통제하려는 강박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손에 쥐었던 힘을 빼고(라파), 잠잠히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십시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주님의 거대한 은혜의 흐름에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를 맡겨봅시다. 


힘을 뺀 그리스도인은 어떤 파도가 엄습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기에 유연하며, 조급해하지 않기에 여유가 있습니다. 채근담의 글입니다. "흐르는 물은 앞서려 하지 않고, 다만 끊임없이 흘러갈 뿐이다." 강물은 흐르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앞서려고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바위에 부딪히면 돌아가고, 길이 막히면 스며듭니다. 그러다 보니 강물은 멈추지 않기에 끝내 바다에 이릅니다.급변하는 세상의 망망대해 속에서, 내 힘으로 버둥거리기를 멈추고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함으로 마침내 바다를 가르고 승리하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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