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성탄절이 되면 저희 교회가 소속되어 있기도 한 북미주 전역에 있는 남침례회(Sothern Baptist Convention) 4-5만여 다민족 교회들이 다같이 해외선교를 위해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이 선교헌금을 일컬어 ‘라티문 크리스마스 국제 선교헌금’이라고 합니다. 이 헌금으로 내년 한 해 동안 전세계 1,200여 종족 가운데 사역하고 있는 4,300여 국제 선교부 선교사들의 사역과 생활을 후원하게 됩니다.
‘라티문(Lottie Moon)’이란 미남침례회 선교사로서 여자의 몸으로 중국에서 일생을 바쳐 선교사역을 했던 선교사님의 이름입니다.
라티문 선교사는 1840년 12월12일 버지니아 Charlotte에서 침례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라티는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58년 12월, 그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버지니아 샬롯스빌 제일 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라티는 버지니아 주립대학의 여학교인 앨버매얼 여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1861년, 그녀는 미 남부에서 최초로 석사 학위를 수여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남북 전쟁 기간 동안 집 근처에 머물렀고, 후에는 켄터키, 조지아, 버지니아 등지의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제가 졸업한 남침례신학교(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설립자인 존 브라더스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습니다. 이 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 그녀는 어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라틴어, 헬라어,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후에는 중국어의 전문가가 됩니다.
교사로 근무하던 1873년, 33살이 되던 해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라는 설교를 듣고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을 다짐하고, 그 해 7월7일에 해외선교부(IMB)를 통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됩니다.
라티문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처녀의 몸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한편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사로 활약합니다.
주 사역지인 중국 탱쵸와 핑투에서 때로 “외국마귀” “천국책을 가진 방문자” “쿠기 여자”등의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중국말을 사용하고, 중국 옷을 입고, 중국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88년에 미국 본부에 편지를 보내서 중국선교에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더 많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남침례회에서는 선교를 더 효과적으로 잘 지원하기 위하여 ‘여선교회(WMU)-한국 교회는 여선교회'를 공식적으로 조직하게 되었고, 당시 선교를 위한 크리스마스 헌금을 실시하여 $3,315의 헌금을 모아 세 명의 선교사를 중국에 추가로 파송하게 됩니다.
라티문은 40년 동안 중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많은 풍토병과 열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더 이상 나처럼 외로운 선교사가 없기를 소망한다. (I hope no missionary will be as lonely as I have been)”고 일기장에 적기도 했습니다. 라티문은 1912년 미국으로 돌아오던 중 12월 24일 성탄절 이브에 일본 고베 항에 정박해 있던 선상에서 72세의 일기로 위대했던 선교사의 생애를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미남침례회에서는 그녀를 기념하여 매년 성탄절이 되면 라티문 선교헌금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1888년부터 지금까지 133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습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우리 교단 소속 수많은 선교사님들에게 이 라티문 선교 헌금이 그들의 사역과 생활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교회도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세계 곳곳에서 또 다른 기적을 낳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탄의 아름다운 찬양과 더불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가장 가치 있는 사역이 될 것입니다.
매년 성탄절이 되면 저희 교회가 소속되어 있기도 한 북미주 전역에 있는 남침례회(Sothern Baptist Convention) 4-5만여 다민족 교회들이 다같이 해외선교를 위해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이 선교헌금을 일컬어 ‘라티문 크리스마스 국제 선교헌금’이라고 합니다. 이 헌금으로 내년 한 해 동안 전세계 1,200여 종족 가운데 사역하고 있는 4,300여 국제 선교부 선교사들의 사역과 생활을 후원하게 됩니다.
‘라티문(Lottie Moon)’이란 미남침례회 선교사로서 여자의 몸으로 중국에서 일생을 바쳐 선교사역을 했던 선교사님의 이름입니다.
라티문 선교사는 1840년 12월12일 버지니아 Charlotte에서 침례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라티는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58년 12월, 그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버지니아 샬롯스빌 제일 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라티는 버지니아 주립대학의 여학교인 앨버매얼 여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1861년, 그녀는 미 남부에서 최초로 석사 학위를 수여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남북 전쟁 기간 동안 집 근처에 머물렀고, 후에는 켄터키, 조지아, 버지니아 등지의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제가 졸업한 남침례신학교(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설립자인 존 브라더스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습니다. 이 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 그녀는 어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라틴어, 헬라어,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후에는 중국어의 전문가가 됩니다.
교사로 근무하던 1873년, 33살이 되던 해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라는 설교를 듣고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을 다짐하고, 그 해 7월7일에 해외선교부(IMB)를 통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됩니다.
라티문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처녀의 몸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한편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사로 활약합니다.
주 사역지인 중국 탱쵸와 핑투에서 때로 “외국마귀” “천국책을 가진 방문자” “쿠기 여자”등의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중국말을 사용하고, 중국 옷을 입고, 중국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88년에 미국 본부에 편지를 보내서 중국선교에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더 많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남침례회에서는 선교를 더 효과적으로 잘 지원하기 위하여 ‘여선교회(WMU)-한국 교회는 여선교회'를 공식적으로 조직하게 되었고, 당시 선교를 위한 크리스마스 헌금을 실시하여 $3,315의 헌금을 모아 세 명의 선교사를 중국에 추가로 파송하게 됩니다.
라티문은 40년 동안 중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많은 풍토병과 열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더 이상 나처럼 외로운 선교사가 없기를 소망한다. (I hope no missionary will be as lonely as I have been)”고 일기장에 적기도 했습니다. 라티문은 1912년 미국으로 돌아오던 중 12월 24일 성탄절 이브에 일본 고베 항에 정박해 있던 선상에서 72세의 일기로 위대했던 선교사의 생애를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미남침례회에서는 그녀를 기념하여 매년 성탄절이 되면 라티문 선교헌금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1888년부터 지금까지 133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습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우리 교단 소속 수많은 선교사님들에게 이 라티문 선교 헌금이 그들의 사역과 생활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교회도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세계 곳곳에서 또 다른 기적을 낳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탄의 아름다운 찬양과 더불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가장 가치 있는 사역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