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료실

대본19-하나님의 사람들의 훈련(왕상17:2-7)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위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힘찬 출발 뒤에 반드시 낙심되는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인생이 그 꿈과는 정반대로 내가 생각하지 않고 원치 않는 기대와는 너무나도 어긋나는 실망스러운 상황을 섦이 전개될 때마다 ‘왜 이럴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 답이 엘리야에게 나와 있다. 아합에게 기근을 당당하게 선언했다. 어두운 시대의 한 줄기 광명한 횃불이었다. 그러던 그가 도망을 간다. 그 모습이 왕상17장이다.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아합왕으로부터 보호를 하기 위해 피신시켰을 것이다. 또 앞으로 3년 6개월 동안 계속될 기근속에서 엘리야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목적이었다면 그렇게 피신시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선이 굵은 엘리야에게는 치졸하게 보일만큼 숨어서 살도록 피신시키셨다. 17장에서 그 문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 뚜렷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엘리야를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 때문이었다.

엘리야의 인생의 절정

그의 인생의 절정은 갈멜산에서 850명과의 1대 싸움이었을 것이다.(18장) 갈멜산의 결투를 하기 바로 전에, 갈멜산을 향해 엘리야가 출발하기 바로 전 그때 엘리야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를 17장 마지막 결론 절이 소개한다. 한 여인의 고백이다.(17:24) ‘이제야’라고 말한다. 17장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끝난 뒤에 ’이제야’하면서 엘리야를 평가하는 성경의 말씀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엘리야를 17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건과 과정들을 통해서 훈련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엘리야가 단순히 길르앗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되도록 훈련을 시키셨고, 단순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만들기 위해 훈련시켰다는 것이다.

엘리야의 훈련의 도장-그릿 시냇가

그릿 시냇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할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던 훈련장이었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등장하기 위해서 훈련소에 입소한 것이다.

왕인 나에게 그릿 시내가?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고 훈련이 있다.

왕으로 그릿 시내가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

첫째,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순종의 훈련을 시키셨다. 엘리야에게 필요했기에 시키신 훈련이다. 2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7장 전체를 주목해 보면 이 말씀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릿 시냇가로 갈 때와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 과부에게로 갈 때 엘리야는 자기 뜻으로 가지 않았다.

성경은 지금 계속해서 무엇인가 중요한 단서를 준다. 하나님이 계속 엘리야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1절에는 그런 말씀이 없다. 왜? 순종의 훈련, 그것이 바로 엘리야에게 필요한 훈련이었다.

순종의 훈련-이해가 안 가는 훈련이다

순교적 각오로 아합에게 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용맹을 사용하지 않고 ‘너는 거기서 떠나라 그리고 저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 있어아 그러면 내가 까마귀들을 보내서 너를 먹여주리라’ 말씀하신다. 지금 엘리야는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게 하나님이 왜 엘리야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말인가, 차라리 아합에게 가서 순교하라면 순교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각오가 있는 분들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말씀이 바로 엘리야가 순종해야 할 훈련의 첫 번째 과목이다. 왜 하나님은 이런 명령을 내리셨는가? 순종이 바로 이런 내용이다. 큰 내용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것이다.

훈련은?-몸에 좋은 약은 쓰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있는데, 그것이 내 뜻, 내 조건과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고 말씀이라면 결국 그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분의 일꾼들에게 바라시는 뜻이다. 이 훈련은 참으로 입에 쓰고 뱉고 싶은 것이다. 엘리야는 이 훈련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훈련, 그래서 그는 그릿 시냇가의 훈련장에서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몸에 익힌다. 순종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어지는 엘리야이다.

언제까지?-두드려 단단해질 때까지
그릿 시냇가의 훈련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이다. 6절 보자. 그릿 시내가는 일종의 조그만 실개천이다. 큰 강물 지역도 아닌 이런 곳은 지금 가뭄에 물이 말라서 살 수 없는 곳이다. 이것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릿-단절’이다.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완벽히 끊어진 아무도 없는 그 작고 고독한 광야의 시내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장으로 그릿이 선택된 것이다.

이제 그림을 그려보자. 아침이 되면 하늘을 바라보고, 저녁이면 또 하늘을 바라보는 이 훈련 어디서 본 훈련인가? 광야이다. 그렇다. 이렇게 하늘만 쳐바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는 곳이 그릿 시냇가이다. 엘리야는 이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이건 반드시이다

이 훈련을 해 보아야 한다.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자기 능력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갔던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으로 이렇게 살았다. 히1장에 소개되는 믿음의 영웅들의 특징은 바로 이런 삶이다.

까마귀-신묘막측한 방법

왜 하필이면 까마귀일까? 이것이 제일 안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엘리야능 아합과 이세벨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엘리야에게 보낸다는 것은 위험하다. 누군가 눈치 챌 수 있다. 불결하고 부정한 까마귀, 죽은 고기나 뜯어먹는 그 까마귀가 산 사람 살리겠다고 고기를 물어 다 준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묘막측한 일이다.

딱 한걸음씩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신묘막측한 방법은 한 번에 한 걸음씩만 인도하시는 것이다. 왜 이러실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한 번에 한 걸음씩만을 인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저장해 놓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그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오늘 나의 훈련장(그릿 시냇가)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는 이런 훈련의 장소가 있다. 세상과 단절되고 오직 하나님과만 혼자서 지내면서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이런 훈련장이 있다.

담임목사 : 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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