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유대 땅에서 혼자서 850명의 사람을 상대해 이긴 싸움이 있었다. 선지자 엘리야였다.
I.엘리야 그는 누구인가?
*역사적 배경
왕상16: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에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과 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이 두 구절의 차이점을 보자. 아합 때 엘리야가 등장한다.
*엘리야에 대한 성경의 소개?
엘리야는 아무 소개가 없다. 왕상17장은 그의 출생 배경, 가정 환경, 성장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그런데 딱 한 구절 ‘길르앗에 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이었다는 정보만 있다. 요단강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개발이 덜된 시골 마을 길르앗, 그러나 길르앗도 그의 고향이 아니었다. 길르앗하고도 정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촌락 디셉 출신인 엘리야다.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는 필부인 그를 이렇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케 하셨다.
*하나님의 대변인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입-대변인’이라는 뜻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 보다 대변인을 세워 전하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다. 그런데 이 대변인도 상황 나름이다. 엘리야는 하루에도 수십 번 하나님의 대변인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만 했다. 당시 이스라엘 왕 아합은 정의나 사랑과는 아예 담을 쌓은 이스라엘 왕조 역사상 가장 악하고 못된 왕이었기 때문이다.
II.하나님이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 선전 포고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어서 회개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준엄하게 꾸짖고 선포하였다.악한 왕인 아합은 하나님의 진리가 무섭지 않기에 그런 말을 전한 엘리야를 죽이려는 것은 뻔하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주력 업종은 농사이다. 왕이 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엘리야는 잽싸게 깊은 산으로 도망가 숨었다.
*하나님 말씀 실현되다
긴 3년 반이란 시간이 지난 뒤,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아합 왕에게 보내셨는데 이번엔 좀 다른 상황을 주셨다. 그건 왕의 비호를 받던 바알 신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00명을 모두 갈멜산으로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경꾼으로 하여 거기서 엘리야와 만나게 하셨다.
III.엘리야의 대담한 제안
엘리야는 이 자리에서 엄청난 제안을 아합에게 한다. 제단에 제물을 놓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누구든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 신이라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850명의 모습
대결은 시작되었고, 먼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반나절이 넘도록 온갖 기도와 춤, 굿을 다 했다. 이것이 바로 18장의 배경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엘리야의 열정
엘리야는 36절에서 기도한다. 비록 850대1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포하는 엘리야는 자기 하나뿐이었지만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의로운 분노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진 것에 대해서 엘리야는 견딜수가 없는 것이다.
*왕으로서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가?
교회 생활에서 언제 화를 내는가, 내 이익, 교회가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 못할 때?
IV.문화 변혁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왜 가뭄일까
농사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나라에 3년 반이라는 가뭄은 정말 죽음과도 같은 형벌이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서 왜 그런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도자 아합 왕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라는 귀신을 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문화의 영향력
사람은 자기가 경배하는 존재를 닮아 가게 되어 있다. 한 사람의 폭력성이 만연해지고 음란이 확산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왜 문화 변혁을 명령하는가?
순결하신 하나님은 음란한 바알 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은 폭력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에게 생명의 근원인 이른 비, 늦은 비를 기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잘못된 문화의 영향력을 되돌리게 하자는 것이다. 문화 명령과 문화 변혁 명령은 다르다.
*오늘의 문화의 특징
3s이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3가지이다.
V.예배 회복
엘리야는 무너진 하나님의 단을 다시 고쳐 쌓고 있다.(30)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했으면 예배드리던 장소가 그토록 엉망이 되어 있었을까? 지독한 가뭄은 인생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예배 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예배 회복 대안
인생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에 있다. 부서진 인생의 문제, 사회와 국가의 망가진 현실을 해결하려면 피 흘리신 십자가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죄는 십자가가 해결이다.
*12개의 돌?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돌을 가져다가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던 단을 고쳐 쌓았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되는 역사가 동시에 일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VI.부분적 순종이 아닌 완전한 순종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순종하여 실천했음을 강조한다.(36)
*순종을 못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알라딘?
다신론이 유행했던 고대 헬라 사회에서는 신을 자기 종 부리듯이 이용해 먹었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종교를 믿을 때 그것은 자신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은 결코 이런 식으로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종 학교에 입학
하나님의 뜻을 알면 거기에 우리의 뜻을 맞추고 순종해 가야지, 하나님의 뜻을 끌어내려서 우리의 계획에 뜯어 맞추려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교회에 성경 공부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성경 말씀 실천 운동이다.
*신앙이란 곧 순종이고 실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삶속에서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게 되어 있다. 말씀에 전도하라고 했으면 전도 세미나만 계속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이웃에게 가서 복음을 나눠야 한다. 엘리야는 신앙이란 곧 순종이고 실천임을 보여주었다.
*단 가득히 물을 붓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큰 통 4개에 물을 가득 담아 와서 12개의 돌로 만들어진 단에 붓기를 3번이나 하게 하셨다.(33-35)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일을 시키신 이유는 간단한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재물을 불살랐을 때 이 일은 확실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적은 기도의 쌍둥이
1)기도하기 좋은 상황
하나님은 자신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게 하신다. ‘어렵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가 되어야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니 말이다. 믿는 자는 믿음으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사30:18)
VII.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다
*하나님의 불
엘리야의 간단한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제단의 물과 제물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믿음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광적인 예배 의식이나 희생이나 강요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한 사람이 한번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분명히 임하게 되어 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서 ‘그는 하나님이시로다’(39)하고 덜덜 떨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불로써 이 땅에 임하면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1)살아게신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
(1)불은 보호막이었다.
(2)불은 나침판이었고 지도였다.
(3)불은 안식처였다.
(4)불은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기름 부으심이었다.
(5)불은 역동적인 힘이다.
*오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현대 교회들은 조직화되어 있고, 기성화 되었고, 좋은 건물, 좋은 장비, 좋은 인력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눈은 말라 버렸고 우리의 기도는 차가워져 버렸으며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 버렸다. 불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불은 무섭고 강력하고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불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의 불은 재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물을 모두 태워 버렸다.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더럽고 죄악 되고 부패한 요소들이 깨끗이 청소된다.
*기독교 역사적 부흥 운동
기독교 역사속에 하나님의 불이 엄청나게 임한 부흥의 순간들이 있었다. 바로 부흥을 경험한 분들의 간증은 뜨거웠다고 한다. 그러자 추악한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VIII.불과 비를 경험한 엘리야
불이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비가 내린다. 하나님의 칼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료하기 위한 칼이기 때문이다. 불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불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 실현했다면, 비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짐을 뜻한다. 그래서 불 다음에 비가 오는 것이다.
*하늘 비는 언제 내리는가?
믿음의 사람 엘리야를 보면 답이 나온다. 기도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에 임하는 것,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에 달렸다.
*영적 축지법으로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
아합 왕이 탄 마차는 갈멜 산에서 이스르엘로 앞서 떠났는데, 두 곳 사이의 거리는 25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런데 엘리야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 허리를 졸라매고 그 빗속을 달리는데 얼마나 빨리 달렸느냐 하면 왕이 탄 마차를 앞질러 갔다고 했다.
어떻게 인간이 그 먼 길을 마차보다 빨리 달렸을까? 엘리야는 사람의 힘으로 뛴 게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고 했다.(46)
*축제의 런너
하나님의 뛴 것은 좋은데 왜 이렇게 뛰었을까?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의 폭발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의 축제의 달리기이다. 엘리야는 가슴 벅찬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뛰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것이다.
*거룩한 광인-이런 경험 있는가?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있는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오고, 비가 옴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입증되었다. 그러니 그는 가만 있을 수가 없어 흥분해서 펄펄 날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가슴속에 충만해 있는 그 영광을 배출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관심한 세상 앞에서 빗속을 달리며 찬양하고 예배하고 선포해야 한다.(합3:2) 미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앞에서 광인의 모습이다.
IX.기적의 열매는 무엇일까?
이 정도의 엄청난 사건, 기적이면 아합은 변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합은 이 사건으로도 회개하지 않고 새 사람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아직도 답답하다. 그럼에도 세상 위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는 내린다.
도대체 무엇이 기적이고, 축복일까? 진정한 기적의 열매는 불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변화된 내 모습이다.
X.왕된 내가 누려야 할 진리
첫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하나님이 보잘것 없는 우리를 대변인으로 삼으셨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의 자리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리로 내 삶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비가 내리는 것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예배에서 불을 경험하고 삶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누려야 한다. 형통의 복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이 위협받는 것에 대해서 거룩한 분노를 품어야 한다. 내 성질로 분노하지 말고 내가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사는 것,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것에 분노해야 한다. 분노의 수준을 바꾸어야 한다.
넷째, 축제의 런너가 되어야 한다. 내 뛰는 모습에 대해서 내 주변에 묻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주님께 미친 광인이 되어야 한다.
I.엘리야 그는 누구인가?
*역사적 배경
왕상16: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에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과 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이 두 구절의 차이점을 보자. 아합 때 엘리야가 등장한다.
*엘리야에 대한 성경의 소개?
엘리야는 아무 소개가 없다. 왕상17장은 그의 출생 배경, 가정 환경, 성장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그런데 딱 한 구절 ‘길르앗에 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이었다는 정보만 있다. 요단강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개발이 덜된 시골 마을 길르앗, 그러나 길르앗도 그의 고향이 아니었다. 길르앗하고도 정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촌락 디셉 출신인 엘리야다.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는 필부인 그를 이렇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케 하셨다.
*하나님의 대변인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입-대변인’이라는 뜻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 보다 대변인을 세워 전하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다. 그런데 이 대변인도 상황 나름이다. 엘리야는 하루에도 수십 번 하나님의 대변인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만 했다. 당시 이스라엘 왕 아합은 정의나 사랑과는 아예 담을 쌓은 이스라엘 왕조 역사상 가장 악하고 못된 왕이었기 때문이다.
II.하나님이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 선전 포고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어서 회개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준엄하게 꾸짖고 선포하였다.악한 왕인 아합은 하나님의 진리가 무섭지 않기에 그런 말을 전한 엘리야를 죽이려는 것은 뻔하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주력 업종은 농사이다. 왕이 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엘리야는 잽싸게 깊은 산으로 도망가 숨었다.
*하나님 말씀 실현되다
긴 3년 반이란 시간이 지난 뒤,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아합 왕에게 보내셨는데 이번엔 좀 다른 상황을 주셨다. 그건 왕의 비호를 받던 바알 신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00명을 모두 갈멜산으로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경꾼으로 하여 거기서 엘리야와 만나게 하셨다.
III.엘리야의 대담한 제안
엘리야는 이 자리에서 엄청난 제안을 아합에게 한다. 제단에 제물을 놓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누구든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 신이라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850명의 모습
대결은 시작되었고, 먼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반나절이 넘도록 온갖 기도와 춤, 굿을 다 했다. 이것이 바로 18장의 배경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엘리야의 열정
엘리야는 36절에서 기도한다. 비록 850대1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포하는 엘리야는 자기 하나뿐이었지만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의로운 분노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진 것에 대해서 엘리야는 견딜수가 없는 것이다.
*왕으로서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가?
교회 생활에서 언제 화를 내는가, 내 이익, 교회가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 못할 때?
IV.문화 변혁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왜 가뭄일까
농사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나라에 3년 반이라는 가뭄은 정말 죽음과도 같은 형벌이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서 왜 그런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도자 아합 왕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라는 귀신을 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문화의 영향력
사람은 자기가 경배하는 존재를 닮아 가게 되어 있다. 한 사람의 폭력성이 만연해지고 음란이 확산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왜 문화 변혁을 명령하는가?
순결하신 하나님은 음란한 바알 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은 폭력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에게 생명의 근원인 이른 비, 늦은 비를 기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잘못된 문화의 영향력을 되돌리게 하자는 것이다. 문화 명령과 문화 변혁 명령은 다르다.
*오늘의 문화의 특징
3s이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3가지이다.
V.예배 회복
엘리야는 무너진 하나님의 단을 다시 고쳐 쌓고 있다.(30)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했으면 예배드리던 장소가 그토록 엉망이 되어 있었을까? 지독한 가뭄은 인생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예배 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예배 회복 대안
인생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에 있다. 부서진 인생의 문제, 사회와 국가의 망가진 현실을 해결하려면 피 흘리신 십자가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죄는 십자가가 해결이다.
*12개의 돌?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돌을 가져다가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던 단을 고쳐 쌓았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되는 역사가 동시에 일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VI.부분적 순종이 아닌 완전한 순종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순종하여 실천했음을 강조한다.(36)
*순종을 못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알라딘?
다신론이 유행했던 고대 헬라 사회에서는 신을 자기 종 부리듯이 이용해 먹었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종교를 믿을 때 그것은 자신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은 결코 이런 식으로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종 학교에 입학
하나님의 뜻을 알면 거기에 우리의 뜻을 맞추고 순종해 가야지, 하나님의 뜻을 끌어내려서 우리의 계획에 뜯어 맞추려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교회에 성경 공부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성경 말씀 실천 운동이다.
*신앙이란 곧 순종이고 실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삶속에서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게 되어 있다. 말씀에 전도하라고 했으면 전도 세미나만 계속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이웃에게 가서 복음을 나눠야 한다. 엘리야는 신앙이란 곧 순종이고 실천임을 보여주었다.
*단 가득히 물을 붓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큰 통 4개에 물을 가득 담아 와서 12개의 돌로 만들어진 단에 붓기를 3번이나 하게 하셨다.(33-35)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일을 시키신 이유는 간단한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재물을 불살랐을 때 이 일은 확실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적은 기도의 쌍둥이
1)기도하기 좋은 상황
하나님은 자신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게 하신다. ‘어렵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가 되어야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니 말이다. 믿는 자는 믿음으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사30:18)
VII.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다
*하나님의 불
엘리야의 간단한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제단의 물과 제물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믿음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광적인 예배 의식이나 희생이나 강요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한 사람이 한번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분명히 임하게 되어 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서 ‘그는 하나님이시로다’(39)하고 덜덜 떨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불로써 이 땅에 임하면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1)살아게신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
(1)불은 보호막이었다.
(2)불은 나침판이었고 지도였다.
(3)불은 안식처였다.
(4)불은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기름 부으심이었다.
(5)불은 역동적인 힘이다.
*오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현대 교회들은 조직화되어 있고, 기성화 되었고, 좋은 건물, 좋은 장비, 좋은 인력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눈은 말라 버렸고 우리의 기도는 차가워져 버렸으며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 버렸다. 불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불은 무섭고 강력하고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불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의 불은 재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물을 모두 태워 버렸다.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더럽고 죄악 되고 부패한 요소들이 깨끗이 청소된다.
*기독교 역사적 부흥 운동
기독교 역사속에 하나님의 불이 엄청나게 임한 부흥의 순간들이 있었다. 바로 부흥을 경험한 분들의 간증은 뜨거웠다고 한다. 그러자 추악한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VIII.불과 비를 경험한 엘리야
불이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비가 내린다. 하나님의 칼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료하기 위한 칼이기 때문이다. 불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불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 실현했다면, 비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짐을 뜻한다. 그래서 불 다음에 비가 오는 것이다.
*하늘 비는 언제 내리는가?
믿음의 사람 엘리야를 보면 답이 나온다. 기도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에 임하는 것,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에 달렸다.
*영적 축지법으로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
아합 왕이 탄 마차는 갈멜 산에서 이스르엘로 앞서 떠났는데, 두 곳 사이의 거리는 25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런데 엘리야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 허리를 졸라매고 그 빗속을 달리는데 얼마나 빨리 달렸느냐 하면 왕이 탄 마차를 앞질러 갔다고 했다.
어떻게 인간이 그 먼 길을 마차보다 빨리 달렸을까? 엘리야는 사람의 힘으로 뛴 게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고 했다.(46)
*축제의 런너
하나님의 뛴 것은 좋은데 왜 이렇게 뛰었을까?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의 폭발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의 축제의 달리기이다. 엘리야는 가슴 벅찬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뛰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것이다.
*거룩한 광인-이런 경험 있는가?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있는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오고, 비가 옴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입증되었다. 그러니 그는 가만 있을 수가 없어 흥분해서 펄펄 날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가슴속에 충만해 있는 그 영광을 배출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관심한 세상 앞에서 빗속을 달리며 찬양하고 예배하고 선포해야 한다.(합3:2) 미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앞에서 광인의 모습이다.
IX.기적의 열매는 무엇일까?
이 정도의 엄청난 사건, 기적이면 아합은 변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합은 이 사건으로도 회개하지 않고 새 사람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아직도 답답하다. 그럼에도 세상 위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는 내린다.
도대체 무엇이 기적이고, 축복일까? 진정한 기적의 열매는 불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변화된 내 모습이다.
X.왕된 내가 누려야 할 진리
첫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하나님이 보잘것 없는 우리를 대변인으로 삼으셨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의 자리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리로 내 삶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비가 내리는 것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예배에서 불을 경험하고 삶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누려야 한다. 형통의 복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이 위협받는 것에 대해서 거룩한 분노를 품어야 한다. 내 성질로 분노하지 말고 내가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사는 것,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것에 분노해야 한다. 분노의 수준을 바꾸어야 한다.
넷째, 축제의 런너가 되어야 한다. 내 뛰는 모습에 대해서 내 주변에 묻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주님께 미친 광인이 되어야 한다.